그림자 반성 / 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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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48회 작성일 17-08-01 09:16본문
그림자 반성
하종오
내가 개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서
나의 그림자를 감추곤
개에게 함부로 짖어 대게 하고 나왔더니
나도 아무에게나 대들 수 있었다
오늘은
그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서
나의 그림자를 감추곤
그에게 나를 손가락질하게 하고 나왔더니
나도 그를 손가락질할 수 있었다
내가 그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무도 다행한 일로 여기진 않으리라
그는 작은 몸피로 그림자를 크게 키워
앞으로 걸어가면서 앞에다 둘 줄도 알고
뒤로 걸어가면서 뒤에다 둘 줄도 알므로
하여간 한때
잠자리가 제 그림자를 나의 그림자에 맞추어 마당에 앉으려 했고
참나무가 제 그림자를 나의 그림자에 맞추어 먼 데에 머물려 했고
산봉우리가 제 그림자를 나의 그림자에 맞추어 바닥에 내려오려 했지
실지로는 내가 나의 그림자를
잠자리의 그림자에 맞추어서 허공으로 따라가
잠자리로 하여금 나를 날게 했고
참나무의 그림자에 맞추어서 둔덕으로 따라가
참나무로 하여금 나를 곧추세우게 했고
산봉우리의 그림자에 맟추어서 꼭대기로 따라가
산봉우리로 하여금 나를 주저앉게 했지
그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서
나의 그림자를 감추고 그를 행동하게 한 건
내가 텅 비어 있어서였다
- 《시작》 2015년 봄호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 『쥐똥나무 울타리』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물의 운명』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정』 『깨끗한 그리움』 『님』
『무언가 찾아올 적엔』 『반대쪽 천국』 『지옥처럼 낯선』 『국경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베드타운』 『사월에서 오월로』 『넋이야 넋이로다』
『입국자들』 『제국』 『남북상징어사전』 『신북한학』 『남북주민보고서』
『세계의 시간』 『신강화학파』 『초저녁』 등
시극집 『어미와 참꽃』
동화 『도요새』 『누가 아기 석가모니로 태어났을까』 『미래에 오는 미륵불』 『하늘 무인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제1회 불교문예작품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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