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 정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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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87회 작성일 18-05-18 11:42본문
봄비
정한용
강을 건너자 비가 가늘어졌다
산발치에 닿아선 하늘까지 맑아졌다
땅은 이미 충분히 젖어
검고 부드럽게 나무뿌리에 담았던 향을 풀어냈다
포클레인이 모래흙 한 무더기
내 키만큼 쌓아놓은 뒤였다
새로 파낸 사토(沙土)는 새 봄비를 맞아 빛이 더 맑았다
이미 마음을 궁글렸으니
세상 전부가 함께 묻힌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흙을 가리고 방향을 잡아 자리를 정한 다음
조용히 내려 놓았다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세계로 들고 있었다
구름 걷히고 햇살 퍼지면서 흙내음 진한 달구노래 들렸는지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후 어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포르릉 산새가 날아간 것인지
산역을 마친 이들이 햇무덤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나는 문득 손이 텅 비었다는 것을
상처가 아리다는 걸 느꼈다
봄비 걷히고
내 알몸 위로 울음이 쏟아졌다
- 정한용 시집 『흰꽃』 (문학동네, 2006년)에서
1958년 충북 충주 출생
경희대 문학박사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1985년 《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 시작
시집으로 『얼굴없는 사람과의 약속』 『슬픈 산타페』 『나나 이야기』
『흰 꽃』 『유령들』 『거짓말의 탄생』
영문시집 『How to make a mink coat』
평론집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 『울림과 들림』 등
2012년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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