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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는 연못 /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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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18-10-08 09:13

본문

어두워지는 연못

      박수현

 


이사를 앞두고

묵혀 두었던 부부용 긴 베개를 버린다

두런거림을 시침질했던 흰 속청은 얼룩지고

속을 채웠던 메밀 알갱이는 푸슬푸슬 부서지는데

베갯모 속 두 마리 원앙은 여전히 흔들리는 물결 위에 떠 있다

연못에 잠긴 버드나무의 푸른 파문이

정갈한 이음수의 단잠을 허무는 동안

베갯모 테두리의 예서체 청홍 목숨 수(壽)자가

유록빛 수면 위에서 귀가 먹어가는 동안

자줏빛 날개를 펼친 수컷과 다소곳한 암컷의

어깨가 당초구름문 밴 자련수 물풀 사이 반쯤 접혀져 있다

함께 살 셋방 얻느라 미리 당겨 쓴 20개월 계금을

꼬박꼬박 부어 나가야 하듯

일생 상대에게 붓는 사랑의 양도 서로가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저 연못으로 한 땀 한 땀 흘러든 햇살과

장대비와 석 달 열흘 가뭄을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생이 달의 속눈썹을 족집게로 뽑을 때마다

물속에 거꾸로 처박히는 원앙의 고약한 비명소리가

캄캄한 그늘을 제 몸에 새기며

소금쟁이처럼 바삐 미끄러져 간다


늦은 오후, 암초록 깊어지는 연못은

물결을 골라 올올히 현을 뜯듯

원앙 한 쌍을 떠받들고 수면에서 굴절된 빛은

간신히 서로를 참아주느라

자글대는 눈가를 새털수, 속수, 매듭수로 꿰매듯 수놓고 있다

 

   —《미네르바》2012년 여름호


112.jpg


 2003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공저 시집 관계에 대한 여덟가지 오해』『티베트의 초승달』『밍글라바 미얀마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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