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인형 / 최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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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3회 작성일 18-10-31 09:55본문
목각인형
최형심
목각인형은 눈썹이 없습니다. 눈알을 잃었습니다. 구멍 안으로 무심히 빈 들이 지나갑니다. 하역노동자는 턱이 없습니다. 길고 푸른 수염 자국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오래전,
푸른 가시벌레가 목각인형을 떠났습니다. 목각인형이 짧은 옷소매를 당기지 않아도 산동네의 지붕들이 헝클어집니다. 목각인형은 뿔이 없었습니다. 하역노동자는 두 손을 타인의 몸에 묻었습니다.
겨울나무에 걸린 일곱 개의 손가락은 누구의 것입니까. 목각인형의 텅 빈 눈 속으로 겨울 숲이 내려옵니다. 푸른 작업복의 눈썹이 지워집니다.
목각인형은 목화솜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하역노동자는 공중 높이 매달린 목 때문에 울 수 없습니다. 라디오의 저녁이 가장 먼 곳의 모퉁이를 돌고 있지만, 그는 새들의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습니다. 난로 위, 저지대의 밤이 눈꽃 지나간 자리를 둥글게 말리고 있을 것입니다. 등이 푸른 남자는 항아리에서 자란 청어를 생각했을까요. 숫잠에서 깬 고양이들이 눈먼 목각인형의 정수리를 핥습니다. 버려진 속날개 아래 빨래들이 희었습니다.
목각인형은 버려진 담배꽁초에 붙은 숨소리를 닮아갑니다.
길을 떠난 사람은 길이 될 수 있을까요.
빈 유리병 속으로 내려온 물고기자리가 목각인형과 하역노동자 사이를 흘러 다닙니다. 겨울의 문장이 사람 밖에 사람을 그리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과정 수료
2008년《현대시》등단
2009년《아동문예》문학상 수상
2012년《한국소설》신인상 수상
2014년《시인광장》시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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