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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따는 사람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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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9회 작성일 18-11-14 09:12

본문

감 따는 사람


     이선영

 

 

당신은 감나무에 올라 감을 따고

나는 멀찌감치 앉아서 감 따는 당신을 바라보네

 

창백한 은사시나무 옆에 주렁주렁 혈색 좋은 감나무

나는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데

아니, 열매는 바라보아야 좋은 것인데

당신은 열매란 꼭 거둬들여야 한다고

 

감을 달았다는 까닭에 지금 당신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그 감나무처럼

당신도 나무라면 열매를 줄 수 있는 나무가 되기를 바라겠지

그렇다면 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어

 

당신이 낑낑대며 감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베면서 감을 따 듯

생을 따고 시를 따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감나무가 함께 겪는 노고를 더러는 안타깝게, 더러는 무료하게 바라보며

햇빛 받아 빛나는 은사시나무의 평화와 고요와 무료팜이 생이자 시이기를 바라는 사람

 

감을 따고 있는 당신과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의 그저 그대로일 수밖에 없는 거리

나란히 서 있는 주황 감나무와 하얀 은사시나무의 그냥 그대로가 좋은 거리

 

- 이선영 시집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창비, 2009)

 



이선영.jpg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 가엾은 비눗갑들』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평범에 바치다』 『일찍 늙으매 꽃꿈』『포도알이 남기는 미래』
『하우부리 쇠똥구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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