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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륭 / 당신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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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9,831회 작성일 18-03-3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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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9 / 김 륭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래서 이다

 

 

 

 

빙의憑依

 

 

저승에서 이승으로

내게 울음을 버리러온 듯

 

누군가 저 멀리 내다버린

바구니 안의 아기 같은

당신 너머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세상의 오랜

기도를 닮아서,

 

두 발이

고드름처럼 녹아내리는

저녁

 

단 하나의 이 심장을

나더러 어떻게 내가

나를 어떻게

몸 없이 우는 법만 배워

입 안 가득 을 넣어보라는 듯

 

숟가락을 집어든

오른손이 왼손에게 죽음을

구해오라는 듯

 

팔꿈치로 달을 쿡, 찔러서

창문 또한 콧구멍보다

작게 접어서

 

두 뺨 가만히

떼어서

 

 

 

 

고라니

비와 손님

 

 

  두 발로 올 때가 있고 네 발로 올 때도 있다, 비는

 

  나는 비를 그렇게 구부린다 가만히 엎드려 지켜본다 오늘은 두 발이다

 

  온다, 비가, 새끼고라니처럼 온다고 써놓고 운다고 읽는다

 

  두 개의 발이 더 필요한 지점에서 심장은 이불보다 착하게 만져지지만 슬픔은 끝내 목줄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빗소리는 그렇게 질기다 두 발로 왔다가 네 발로 돌아간이 있고,

내가 나를 애완용으로 키우지 못한 것은 사후의 일이다 함부로 들어 올렸던 앞발이 가죽나무

잎사귀 위에 몇 개의 빗방울과 함께 떨어져 있다 어미를 찾는 새끼고라니의 눈망울을 두드려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비는 오고 이미 죽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에 섬이 있고 손님 온다

  온다, 사람은 사람으로 부족해 가늘게 눈 뜬 도둑고양이를 사용하거나 개나 염소에게 끌려

다니기도 한다 참 다행이다, 오늘은 두 발이고 뿔이 없다 나는, 죽은 척 지켜본다

 

  우산들은 좀 앉으시지, 늙은 몸 가만히 두고

 

  하늘을 기어오르는 구부러진 송곳니

 

 

 

 

 

검은 어항

 

 

 

임산부처럼 앉아있다 그 남자

가끔씩 물고기 눈을 감겨줄 수 있는 음악이나 만들면서

지나간 잠은, 검은 모래로 만든 어항

 

당신을 단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밤이 있었다 그냥, 그냥이라는 말이 좋아서

당신이라면 내가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내 기억을 키우고 있을 것 같아서

아무도 몰래

 

사랑은 언제나 맞은 적도 없었지만 틀린 적도 없었다

 

돌멩이를 던지면 동그랗게 태어나는 어항, 내가 사랑한 사람은 당신이지만

당신이 사랑한 사람은 내가 아닌데도 하나의 어항 속에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야 세상의 전부가 되는 걸까

 

세상의 반은 어둠이어서 물로 뛰어들어 눈을 씻는 달, 검은 기억 속을

길게 빠져나오는 몸 이야기, 잊어버린 마음이 아파 어두워진 어항, 내 잠마저

모래시계처럼 옮겨갔을까

 

기억은 검은 노래도 불러준다 물고기가 눈을 감고 따라 부르는

노래, 같이 살았어야 했는데 같이 살아야 하는데, 단 한번만이라도

물고기를 키우는 임산부처럼 앉아서

 

같이 살 수 있을까

 

   

 

 

 

녹턴

 

 

 

함께 살지 않고도 살을 섞을 수 있게 된다

 

이불홑청처럼 그림자 뜯어내면, 그러니까

내게 온 모든 세계는 반 토막

주로 관상용이다

 

베란다에는 팔손이, 침실에는 형형색색의 호접난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의 그녀와 나는 서로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죽었으면서도

살아있는 척 손만 잡고,

죽음을 꺼내볼 수 있게 된다

 

화분에 불을 주듯 그렇게 서로의 그림자로

피를 닦아주며 울 수 있게 된다

 

과 싸우던 단 한 명의 인간이

두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윤이형, 단편 쿤의 여행중에서

 

 

 


 

버찌는 버찌다

 

 

 

  버찌가 유명해진 것은 버찌 때문입니다 버찌는 참 많습니다 첫사랑이 많아서 이름도 많고

나이도 참 많습니다 앵실(櫻實)이라 불리든 체리라 불리든 첫사랑은 시끄럽고 두고두고 식용

입니다 직박구리 한 마리 빨갛게 익은 버찌를 먹고 있습니다 버찌에 관해서라면 직박구리도

할 말이 많습니다 삐이이이이익 버찌는 언제나 버찌고 버찌는 언제나 버찌를 데리고 다니고

버찌는 버찌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버찌가 하필이면 왜 벚나무에 올라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찌가 벚나무를 내려와도 버찌는 버찌입니다 버찌가 버찌랑 둘이서 더는 못살겠다 싶을 때

버찌가 왔습니다 버찌는 언제나 일요일이고 삐이이이이익 버찌는 버찌입니다 버찌는 언제나

처음이고 마지막입니다

 

 

 

 

대부분의 연애류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행여 아는 사람이 될까봐 나는, 나랑

좀 멀리 떨어져 앉아서

 

트렁크를 개처럼 끌고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다리를 오도독 뜯어먹었다

 

참 멀리도 왔다는 기분

이런 날의 연애는 방아깨비처럼

나이는 늘 먹던 걸로,

 

해외여행을 조르는 애인 두 뺨 사이에

- 코를 풀던 손바닥 한 장 끼워 넣는 동안

 

모가지 빳빳하게 세운 뱀 한 마리 지나갔고

소설에게 차였다는 소설가 녀석이

말복을 데리고 왔다

 

어쩜 아는 것들은 하나같이 교양이 없는 걸까

 

내가 나를 피해 슬그머니 한쪽 발을

들어 올려야 할 때가 있다

 

오줌 누는 멍멍이 털을 벗겨

애인에게 입혀주고 싶었다

 

너무 멀리도 왔다는 기분, 그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 같아서

 

볼펜 꼭지를 똑딱거리며 나는 슬슬

우리 집이 모르는 곳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샤워

 

 

 

 

   열대식물을 생각했다.

 

 

   당신은 마음에 손잡이가 달려있다고 했다. 당신이 아름다워 보였지만 내가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었다.

 

 

   털이 북슬북슬한 몸으로 마음까지 걸어 들어갈 궁리를 하다보면 사막과 친해졌다.

 

 

   짐승이란 말을 들었다. 나는 손잡이가 몸에 달려있었고 사막여우 같은 당신의 마음이 걸어

다니기엔 더없이 좋아보였다. 그때부터였다.

 

 

   사는 게 말이 아니었다. 벌레잡이통풀, 끈끈이주걱, 파리지옥…… 사랑은 어디에 달려있던

손잡이일까, 하고 궁금해졌다.

 

 

   당신의 울음에 기여한 문장들로 샤워를 하면서 열대식물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당신을 너무 착하게 살았다. 나는

 

 

   꽤나 괜찮은 짐승이고 그래서

 

 

   쫓겨난다고 생각했다.

 

 

 

 

 

 

 

 

 

식물K

 

 

 

 

 

머릿속에 살던 짐승들이 염소를 따라 가슴까지 내려와 죽었습니다

손에 숨을 쥐고 그러니까 꽃 대신 뱀을 쥐고 나는

지금 누워있다, 는 문장으로 수습(收拾)된 사람

 

 

당신은 내게서 꺼낼 수 있는 짐승들이 몇 마리나 남았을까 궁금해 하지만 그것은

내 죽은 숨들을 발밑에 심는 일, 봄이다 내 피가 내 몸을 돌아다니다 흙을 묻히듯

그렇게 봄은 까마득히 무덤 위에 올려놓은 뗏장처럼 간신히 숨만 붙은 노동이 되고

종교가 되고

 

 

삐걱거리는 침대는 나를 비루하고 지루하게 살아낸 몇 마리 짐승들의 딱딱한 기억,

입 안의 울음들이 그랬듯이, 갔어요, 방금 출발했다니까요 퉁퉁 면이 불어터진 우리

동네 중국집 주인장 말씀을 따라

 

 

마침내 나는, 나를 떠나 나를 끓어오르려는 숨의 임계 너머로 두 발을 녹일 수 있게

된다 너무 일찍 출발했거나 너무 늦게 도착했거나 목숨이란 게 슬그머니 문밖에

내다놓은 자장면 빈 그릇 같아서

 

 

집으로 가자, 고 말하지 않는 식물들 사이

숨이 자꾸 흘러 흙이 붙은 뿌리째 떠낸 비곗덩어리처럼 나는, 내 몸을

따로 흘러 내가 없고 아내도 없고, 하늘을 흘러내린 썩은 동아줄에

딸 하나 가만히 묶여있고

누워있다, 는 단 하나의 문장 위로 바람 간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의자와 염소가 하늘을 뒤집어 입는 저녁

바지가 가슴까지 올라가 죽었습니다

 



와이퍼

 

 

 

당신, 잘살고 있다는 풍문

닦아내고 지우면 이미 죽은 사람으로

돌아올까

 

당신이 지어내는 죄

오랜 빗줄기처럼, 당신이 내리는

 

참 오래도 죽는구나, 당신아

 

당신, 당신이란 내 하나뿐인

의 이름으로

 

죽지도 않고 썩었구나,

 

마음아

 

 

 =======================

 

김 륭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3년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2014년 제9회 지리산문학상    

2012년 시 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2018년 시 집 원숭이의 원숭이(근간)

2009년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2012년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2014년 동시집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2014년 동시집 엄마의 법칙

2016년 이야기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2014년 그림책 펭귄오케스트라(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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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향일화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일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락포엠 시인 초대에서 뵈었던
김륭 시인님의 좋은 시편을
시마을 뜨락에서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좋은 시가 봄처럼 기분을 바꿔주네요 감사합니다~

대왕암님의 댓글

profile_image 대왕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륭 시인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올려주신 예쁜 글 잘 읽어 깊은 감상 잘하고 갑니다
김륭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 올려주지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여 행복을 누리세요
선생님의 글 잘 모시고 갑니다 허락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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