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의 명시 감상 끔찍한 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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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동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80회 작성일 17-08-28 06:51본문
끔찍한 태교
정동재
호족은 호랑이를 낳고
곰족은 곰을 낳고
토끼족은 토끼를 낳고
오렌지족은 오렌지를 낳고
싱글족은 싱글을 낳고
미시족은 미시 낳고
세상 별다를 일 없었다
새로운 탄생은
신을 추앙하는 족속과
학문을 신봉하는 족속
인정머리 없이
진화하는 로봇뿐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열 달 태교 산모도 분만실에서 악쓴다
해를 거듭하는 우주
새해를 낳는다
해마다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선과 악, 팽팽히 줄다리기한다
진통 중이다, 우주
세상 끔찍할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고, 트라시마코스는 “인간은 본디 악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라고 말했다. 과연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일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본디 악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일까? 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선과 악이란 있을 수가 없다. 지식을 가진 자가 더 끔찍하고 잔인한 죄를 짓고, 살인, 강도, 강간,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무지한 자가 오히려, 거꾸로 더욱더 착하고 선량한 인간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식의 힘과 무지의 힘이 부딪치면 지식을 가진 자가 백전백승을 하기 때문이다. 지식이란 본래 사기 치는 도구이자 최고급의 흉기이고, 이 지식을 가진 자가 전세계를 지배하고 그 모든 선악을 강자의 힘으로 정하게 된다. 사회적 관습과 풍습에도 강자의 힘이 배어 있고, 도덕과 윤리에도 강자의 힘이 배어 있으며, 법과 질서에도 강자의 힘이 배어 있다. 트라시마코스의 말대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며, 선과 악이란 지식을 가진 자가 제멋대로 규정한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동재 시인의 [끔찍한 태교]는 우주가, 인간이, 로봇이 선악을 배고 그 진통 중이라는 사실을 가장 예리하고 날카롭게 역설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호족은 호랑이를 낳고 곰족은 곰을 낳는다. 토끼족은 토끼를 낳고 오렌지족은 오렌지를 낳는다. 싱글족은 싱글을 낳고 미시족은 미시를 낳는다. 세상은 별다를 일이 없었다. 새로운 탄생은 신을 추앙하는 족속과 학문을 신봉하는 족속으로 이어지고, 이제는 인정머리 없이 진화하는 로봇으로 이어진다. 열 달 태교 산모도 분만실에서 악쓰고, 해를 거듭하는 우주도 새해를 낳는다. 날이면 날마다, 또는 해마다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선과 악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우주는 그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진통 중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선과 악이란 없다. 선의 다른 이름은 악이고, 악의 다른 이름은 선이다. 호족은 호랑이를 낳고 곰족은 곰을 낳는다. 토끼족은 토끼를 낳고 오렌지족은 오렌지를 낳는다. 싱글족은 싱글을 낳고 미시족은 미시를 낳는다. 세상은 별다를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나 정동재 시인의 이 시구, 즉, “세상은 별다를 일이 없었다”는 대단한 반어이며, 역설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호족, 곰족, 토끼족, 오렌지족, 싱글족, 미시족은 태생부터 계급차별적이며, 따라서 이 계급차이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협력하는 공생관계를 맺거나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적대관계를 맺게 된다. 호족과 곰족, 오렌지족(부유한 자)과 미시족(교양있고 세련된 자)이 공생관계를 맺는 것도 보통이고, 토끼족과 싱글족이 공생관계를 맺는 것도 보통이다. 하지만, 그러나 전자(호족, 곰족, 오렌지족, 미시족)의 종족과 후자(토끼족, 싱글족)의 종족은 그 계급적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적대관계를 가지며 그 적대관계로서 한 국가, 또는 이 세계의 양날개를 구축하게 된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무지하고 게으른 자라고 말하고, 가난한 자는 부자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온갖 사치와 약탈과 착취를 다한다고 말한다. 어쨌든 이 세상의 근본법칙은 투쟁이며, 이 투쟁은 “신을 추앙하는 족속과/ 학문을 신봉하는 족속/ 인정머리 없이/ 진화하는 로봇”을 낳게 된다. 투쟁은 이 세상의 근본법칙이며, 만물의 아버지이고, 그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태교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을 가진 자는 부자가 되고, 지식을 갖지 못한 자는 가난한 자가 된다. 부자는 온갖 호의호식을 하면서 잘 살 수가 있지만, 가난한 자는 먹고 잠 자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정동재 시인의 이 [끔찍한 태교]는 선과 악이 팽팽하게 줄다기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이자 이 ‘선과 악’을 넘어선 또다른 세계를 모색해보는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가 있다. “상승욕구 빵빵한 지상은 하늘을 갈아타는 환승역/ 찬불가와 찬송가 신흥세력까지 저마다 승천의 목소리 높인다”, “연말/ 스님은 찬송가를 목사님은 찬불가를 부르며 손잡은 모양새”라는 [새 하늘]이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이다.
정동재 시인의 분노는 자기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한 분노이자 가난한 자로서의 분노라고 할 수가 있다. 호족에 대한 분노, 곰족에 대한 분노, 오렌지족에 대한 분노, 미시족에 대한 분노, 종교인에 대한 분노, 학자에 대한 분노, 자연과학의 성과와 현대문명에 대한 분노, 전반적으로 선인이라기보다는 악당 중의 악당에 대한 분노가 그의 첫 시집 {하늘을 만든다}에는 배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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