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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 / 정윤천, 이종원시집 「외상 장부」해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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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018회 작성일 17-11-29 10:27

본문

비포장도로 끝

세월의 발걸음 짚어놓은

녹슨 양철 지붕이 누워 있다

햇살이 깨진 유리창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선다

젊은 아낙은 노파로 바뀌었고

가판대는 듬성듬성 머리가 빠져

곧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어딘가 낡은 부적으로 걸려 있을 지도를 찾는다

십여 개 암호를 차례로 호출하지만

일치하는 숫자는 겨우 서너 개

그도, 두부, 막걸리, 소주 같은 일반 명사일 뿐

눈깔사탕, 라면땅 등은 고어(古語)되어 묻힌 지 오래다

노인도 나도 멋쩍은 웃음으로

기억의 자물쇠 하나를 겨우 푼다

공소시효 끝나버린 아득히 먼 날

어머니 이름을 팔아 달콤한 맛을 수없이 도적질했던

그 물목들이 비문으로 서 있다

상환하지 않아도 될 영의 숫자에

속죄의 눈물로 다 지우지 못할 낡은 수첩

먼 길 떠나며 원본까지 가져가 버려

흔적 또한 없다는 것

침묵의 금고에 잠든 어머니를 깨워

몇 배로 갚아주고 싶다

<외상장부>


이종원 시집 “외상장부”의 표제 시이다. 위에서 보았던 “어떤 독백”이 이종원 시의 한 맥락의 총화였다면, 이 시 역시 이종원 시의 ‘뒤’의 시편에 대한 총화일 수 있었다. 오랜 기억에 의존하면, 아마도 이 시는 그의 등단작들 중의 한 편이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의 펌프질을 통하여 “외상장부”의 그물코는 짜여 진다. 어쩜 길어 올렸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시의 화자는 “햇살이 깨진 유리창 문을 밀고 들어선다” 시의 긴장이 살아나는 대치적인 문법이다. 유리창이 깨진 집이 아니라, 햇살이 깨진 집의 유리창이다. “젊은 아낙”은 “노파”로 바뀌었고, “가판대의 머리”도 “듬성듬성” 빠져 있다. -있었던 공간에서, ”기억의 지도“를 찾는다. 무슨 일을 하자는 것인지.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설왕설래“. 그렇게 한참만의 설왕설래 뒤에서야 ”기억의 자물쇠“ 하나가 걸어 나온다. 그것은 ”공소시효도 끝나버린 아득히 먼 날“이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팔아 달콤한 맛을 도적질 했던“ ”낡은 수첩“속의 날들이기는 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직도 자신의 뇌리 속에서는 ”밤 기차“처럼 지나가는 ”물목“의 ”이름“들이 찢겨 버렸다. ”원본이 없다“. 뽀빠이와 라면 땅과 풍선껌과 박하사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외상장부”안의 이종원은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거기 “침묵의 어머니의 이름을 지우”고 “몇 배라도 좋으니 갚아주고 싶어” 한다. 이종원의 회고시의 내면에서 그의 시의 정신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시는 그렇게 정신의 산물이었다. 정신이, 시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은 온갖 시들은 사실 글짓기라 부르는 게 더 옳은 것이다. 시에게로는, 그 시를 출발 시킨 정신의 정거장이 있어야 한다. 그 정거장의 출발지에서 버스가 되었건, 기차가 되었건 간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 시의 여정은,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은 미지에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이 때. 시의 화자는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면 안 된다. 부지런을 떨며 창밖을 지나가는 풍경들을 살피고, 지나가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차 안의 동정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하다못해 ‘좋은 생각’ 한 권이라도 꺼내 읽으며 이 지난한 여정을 마쳐야 하였다. 그래야만 그의 시의 “비포장 도로 끝에서” 자신의 생의 낮은 곳이거나 어두운 곳. 부끄러웠던 곳에 놓고 온 “외상장부”인 “낡은 수첩”은 조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언술은 다시금 영혼 없는 상상력 훈련의 조합 뒤에서 이루어진, 그 무슨, “안개의 강둑 저편에 어린 내 페루가 살고 있다” (3초쯤 걸려서 이루어진 문장)는 식의 글짓기들을 물리치는 방식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이종원에게 그의 “외상장부”는 현재 진행형의 식지 않은 마음이다. 그는 먼 과거 속에 두고 온 “외상장부” 하나를 찾아서, 길을 떠나는, ‘티브이 문학관’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시의 “외상 장부” 속에서, 자신의 “외상장부”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갈고 닦아내야 할 시의 정신임을 응시하기를 바란다.

사실상 이종원의 시들보다 이종원의 “외상장부”가 더 아름다웠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족대로 잡은 퉁가리를 꺼내다/ 엄지손가락을 쐬었다/ 너른 강 바위 그늘의 자유를 옥죄었으니/ 뼈있는 일침을 놓은 것이다/ 허를 찌른 연유를 모를 리 없지만/ 혀의 습성 또한 나무라지 못한다/ 먹이사슬이라는 함수 yx의 상관을 따져본다/ 주고받았으니 등식이 성립한다/ 맹독에 쏘인 손가락뿐 아니라/ 물 밖을 나온 퉁가리 또한 절규를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침탈했던 타인의 자유가 얼마이며/ 되려 받은 독이 얼마인지 무게를 가늠해 본다/ 과정도, ()도 어긋난다 해서 / 오답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은/ 나도 너를 향해 차고 다니는/ 독주머니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 숟가락도 안 되는 식욕이 불러온 통증/ 풀리지 않은 분노로 가시가 꼬리 친다. <퉁가리에 쏘이다>


이종원 시의 내일의 지점에 이 시를 놓고 싶었다. 그가 차고 다니는 시의 “독주머니”는 어쩌면 바리새인들의 대척점에 놓여진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주고 받았으니 등식이 성립”될 거라는, 타인의 이해. 자신의 내부부터 점고하는 차가운 율법의 정신. “퉁가리”의 “절규”를 절규로 받아들이는 온유의 지점에게로 있었을 것이다.


이종원의 시의 앞날들이 또한 “희망을 깁던 사내”들의 “팔뚝”이 되어 “태양”으로 “펄펄” 끓기를 바란다. <태양 특장>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생활의 현장에서 그가 마주치고온 삶의 한 장면에서처럼. 또한 “다시 태어나도 날줄에 씨줄을 얹어/ 또 한 생, 수틀을 펼쳐놓을 이파리 한 장. <바디>와도 같이, 그의 시 역시 날줄에 씨줄을 얹어보는 ”바디”의 작업이기를 원하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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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소 지루하고 길게 읽힐지도 모르는 해설을 모두 올려 드림은
단순히 해설 이상의 내면에 담겨진 서술에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울림이 있기에 올려드립니다

* 1일 1편의 규정을 부득이하게 어겼습니다 (한 지면에 다 들어가질 않네요)
  혹, 절대 안된다 싶어 쪽지 주시면 삭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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