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입술로 / 최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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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63회 작성일 18-02-02 02:36본문
목마른 입술로 / 최예술
술도 약도 여자도 없는 방에서
가닿을 수 없는 진리에 대해 쓰다가
자꾸만 잠이 들었습니다,
꿈
달콤한 귓속말로 이어붙인 세계
바느질로 군데군데 비밀을 기워 넣고
태엽을 감아 분노를 적절히 조절하며
부러진 안경다리를 엮어 의자를 만들고
빨강 페인트로 우체통을 정성껏 칠하고
보드라운 솜을 뭉쳐 인형을 완성합니다,
아직 최초의 인류는 도착하지 않았는데,,,
성난 누군가가 힘차게 외쳤습니다
"제발 멍청한 축제를 그만둘 수 없나요"
마을 사람들은 재빨리 비밀 속으로 사내의 목소리를 박음질 합니다
이곳은 깨어질 수 없는 세계
날마다 비밀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소년은 어린 사과나무에 정성껏 물을 줍니다,
꿈에서 깨면 다른 세상에서 깨어난다
오늘은 더러운 해변에서
솜사탕을 만들고 커피 심부름을 한다
맨발에는 사탕 종이와 뒤엉킨 해초들이 감기고,,,
남은 원두 찌꺼기로 쓰디쓴 커피를 내려 마시며
다음에 도착할 마을을 상상한다
언제까지 우리는 잠들기를 두려워하며
살아 있음을 유예하는 걸까
울며 울며 일곱 개의 층계를 오르던* 소년은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달콤한 사과파이프를 베어물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창고
"지금 여기 쌓여 있는 물건들 중에서 "침대" 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네 것으로 삼아도 좋아"
너는 창고를 활짝 열어 주었는데
그곳에는
썩은 나뭇가지만 잔뜩 쌓여 있었다,
* 박안환의 <일곱 개의 층계>
* 최예술 : 1987년 서울 출생, 2011년 <문학동네>로 등단
# 감상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니 / 지난 하루 하루가 무서웠다
무엇이나 꺼리낌없이 말했고 / 아무에게도 협의해본 일이 없던
불행한 연대였다"
박인환 시의 "일곱개의 층계" 첫번째 연이다, 음정 박자가 같은 음악처럼
두 시가 운율과 심상의 흐름이 엇비슷 하다
나를 세상에 비추어 보는, 나와 너의 인간관계의 방식에 관한 문제, 긴장감
감도는 미지 세계로의 여행, 무엇인가 갈망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도전,
감옥 같은 현실 탈출 대한 고뇌에 찬 은유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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