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 / 이재무
페이지 정보
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05회 작성일 18-06-10 03:46본문
해산 / 이재무
늦은 밤 산속 임자 없는 밤나무들
다 익은 영근 밤알 연달아 토해놓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도토리나무도
덩달아 바빠져서 바람을 핑게로
몸 흔들어댄다 아람 벌어져 떨어지는
열매들 이마 때릴 때마다 끙, 하고
산은 돌아눕는다 설핏 잠에서 깬 다람쥐
두리번거리다 곧 귀를 열어젖혀
토록토록 열매를 세다 다시 잠든다
저 멀리 인간의 마을은 불꺼진 지 오래
신혼방 엿보고 오는 길인지
얼굴 불콰한 달빛
숨가쁜 소리로 환한 숲속
나무들 몰래 일어나 바심하느라 여념이 없다
내일 多産 마친 나무들 눈빛 더욱 맑고
몰라보게 몸은 수척해 있으리라
* 이재무 :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문학> '귀를 후빈다'
로 등단, 2015년 제12회 풀꽃문학상 수상,
# 감상
교교한 달빛 아래 임자 없는 밤나무 숲에서는 영근 알밤 연달아 떨지고
바람을 핑게로 도토리나무도 덩달아 바빠진다
열매가 이마를 때릴 때마다 산은 끙, 하고 돌아눕고 설핏 잠에서 깬 다람
쥐는 두리번거리며 열매를 세다 다시 잠든다
멀리 불꺼진 인간마을 신혼방 엿보고 오는지 얼굴 불콰한 달빛,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造物主께서 자기가 만든 세상이지만 가을걷이 하는 풍경 너무도 아름다워
내려다 보시고 붓을 들어 우주에다 그림으로 그려 놓으셨으리라
우리 살던 고향마을 가을 되면
첫돌박이 웃음 같은 먹골감 열려
온 마을 붉게 물들고
동구 밖 밤나무 숲에는 알밤 영글어서
와르르 안개 낀 새벽마다 떨어지지요
그대여, 생각나나요
찬연히 쏟아지는 달빛 아래
멀리서 누렁이 울음소리 들려오는
늙은 대추나무 밑 돌담길을
그때 달빛 같은 그대 마음 그대로겠지요
그리워 지내요 달빛 속 그대 모습이
- 졸작 <띄우지 못한 가을 편지>중에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