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쇼트 =문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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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9회 작성일 23-04-04 08:34본문
바닐라 쇼트
=문혜연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올리브 오일 두 스푼, 통후추는 갈아서 톡톡 우리가 좋아하는 디저트 화면에는 흑백 영화 케케묵은 전쟁 이야기 잠깐 아직도 소원으로 세계평화를 비는 사람도 있어 너는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다고, 이유가 없어 보여도 두 번만 반복하면 이유가 생긴다고 알겠어 케케묵은 취소 아이스크림을 다 먹기도 전에 영화가 끝났다 검은 화면에 떠오른 우리들 흑백의 얼굴 너 좀 고전적으로 생겼다 옛날 사람처럼 생겼다고 눈썹이 짙어서 그런가 생각하는데 엔딩 크레딧 뒤로 장면이 펼쳐진다 나는 내 무덤 앞에 흰 꽃을 내려놓는다 시든 밤의 흰 꽃 흑백으로도 선명한 근데 흑백 영화에 흑과 백만 있는 건 아니야 너는 빛에 대해 말하다 못해 영화의 역사까지 얘기할 것 같고 뤼미에르 형제 나도 알아 뤼미에르 뜻이 빛인 것도 알아? 응 안다고 사실 몰랐지만 어차피 너도 대답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말고 그런 네 이마가 잠시 반짝 빛난다 검고 짙은 눈썹 눈 앞의 너와 오지 않은 장면의 내가 서로의 얼굴에서 발견하는 어떤 옛날은 오지도 않고 뒤늦게 깨문 통후추 한 알 밀려오는 화한 그래서 어떻게 끝낼까? 끝나지 않은 채로 끝나야만 끝나는 것도 있지 우리는 미완결 대신 열린 결말이라는 말을 좋아해서 그렇게 두기로 했다 아이스크림은 녹아도 맛있고 차갑고 달콤한 바닐라, 초록의 풋내, 알싸함 우리는 잠들고 영화는 흘러가고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리던 빛과 장면의 그늘들 장면은 우리를 넘어 먼 곳으로 나아간다 고전적으로
문혜연-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鵲巢感想文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보인다. 어쨌든 시인께서 사용한 시제 ‘바날라 쇼트’는 신선한 어감과 생소함이 깃든 소재로 닿는다. 까딱 잘못하면 쇼 타임으로 끝날 뻔한 소재였기에 그렇게 보이기 싫어서 길게 좀 더 길게 끌고 가려는 의도가 내심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약간은 웃음이 인다.
우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대한 색은 누리끼리하지만, 흰색에 가깝다. 어쩌면 순수를 지향하지만, 무엇이든 세상에 나온 이상 완벽한 순수, 결백을 띄는 건 없겠다. 올리브유 두 숟가락, 물론 올리브유도 누리끼리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보다는 유체성을 띄며 부드럽기가 그지없다. 두 숟가락, 한 숟가락은 왠지 미흡한 고정적이며 고전적인 두 숟가락 이것 역시 막막하기는 매 한 가지다. 통후추는 향신료다. 갈아서 톡톡, 색깔과 멋스러움. 어떤 다채로움에 대한 신선과 눈빛을 상징한다.
디저트 화면에는 흑백 영화 케케묵은 전쟁 이야기뿐이다. 한 차례 사랑이 지난 시점은 언제나 이해상반과 인식 부재에 다만, 흑백처럼 한때 누린 본연의 색은 없어지고 영화처럼 지나간 우리의 역사만 남는다. 그러니까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그런 이유도 두 번 반복하면 지루하기는 똑같고 이유 아닌 이유에 권위적이며 사적인 데다가 삐친 낯빛만 남는다.
그러나 사랑은 흑백처럼 지나간 엔딩 크레딧처럼 장면을 받혀 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흰 꽃은 늘 피어 있는 일이며 그것은 영화처럼 떠올리며 너와 나 지나간 역사만 자꾸 돌이켜 보는 일, 아무 소용도 없다. 뤼미에르, 니기미 뭐 같은 뤼미에르 고작 조명발 아래 꿈틀거리는 이 빌어먹을 감 같은 죽일 수 없는 본능에 대한 눈발뿐이냐?
검고 짙은 눈썹, 인식은커녕 아주 태연한 뜻밖의 부재만 남겨놓고 너 하고 싶은 말만 떠벌린다. 옛날 그 좋았던 시절은 다 갔다. 뒤늦게 통후추 한 알 깨물어 보지만 그래 경험이었어! 하고 끝내기에도 석연찮은 너와 나 이제는 지겨워 지겹단 말이야 끝나야 하고 끝내는 게 맞고 그래 맞아 이건 미완이 아니야 열린 결말 같은 것 뒤끝이 없어 뒤끝이 없게 후후 지나면 거저 아는체하며 친구처럼 다시 돌아가는 거야 초록의 풋내 같은 녀석,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는 그렇게 권위적이고 여전히 짙은 눈썹만 그리는 사람
동인 선생께서 올려 주신 시 한 수였다. 이 시에서 석연찮은 건 역시 외국어다. 바닐라, 쇼트, 올리브, 스푼, 엔딩 크레딧, 뤼미에르 같은 시어다. 물론 한 세대를 반영한 작품으로 신춘당선작이지만 우리 글과 사랑의 장에서 이를 지적하는 것도 어쩌면 고전적이겠다. 장면은 우리를 넘어 먼 곳으로 나아가는 일, 다채로움과 융합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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