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황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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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4회 작성일 23-06-13 21:34본문
공
=황유원
술 먹고 오후 두시에 일어나다 하루를 공치다 공도 안 찼는데 오늘을 공치다 공은 속이 공해서 공인가 나는 대갈통이 아주 공해서 이런 공한 시나 끄적인다 공친 하루에 대한 시 심심해서 시를 쓰던 펜도 한번 굴려보고 공은 울린 지 오랜데 나는 그냥 코너에 멍하니 앉아 있는 중이고 레퍼리의 시끄러운 경고를 묵살하고 관객들의 야유를 묵살하고 거기에 조금 신경이 거슬리던 나까지 묵살하자 마침내 텅 빈 경기장에 공하게 남겨진 기분 공한 소리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다 고요해진 공 마침내 공 나는 몸을 공처럼 말고 이리저리 굴려본다 내리막길을 만나 신나게 굴러보고도 싶었지만 가도 가도 내리막길은 없어 눈감고 내리막길이나 상상하며 머릿속에서나 굴러내려가보는 어느 공한 하루
鵲巢感想文
오후 두 시다. 술 먹고 난 후 아직 혼미한 상태다. 시는 늘 그런 상황에서 왔다. 현실도 꿈만 같고 종이 위 그려놓은 꿈도 사실 꿈이나 다름없는 세계, 마치 꿈속 한바탕 놀이처럼 공이며 허다. 레퍼리referee, 심판審判의 어떤 경고도 무시하고, 편파나 오심에 관심 두지 않는 오후다. 야유 먹을 만큼 비우지 못한 공이다. 그러니까 건더기 남은 하루에 대한 반성 역시 공하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공, 텅 빈 경기장처럼 텅 빈 마음일 뿐 허공 아래 살아 숨 쉬며 머리만 긁적이는 두 시, 참 편안하다. 비록 하루 공친 일이지만 一場寵辱渾閒事일장총욕혼한사 한마당 출세와 치욕도 다 부질없는 일, 공한 삶에서 공한 하루, 생선을 튀길 것인가 찔 것인가 고민만 한다. 아니다. 회로 쳐 먹는 일까지 신선新鮮에서 신선神仙까지 공한 바닥에다가 너절하게 쳐 보는 비늘에서 아릿한 비린내까지 기어코 후장을 다 덜어낸 그 손 닦아보다가 비벼보다가 구린내 이르는 길에서 감각의 선두를 유지한다. 공한 하루에 대한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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