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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짓거나 지으려고 하네 / 정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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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현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60회 작성일 16-12-0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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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짓거나 지으려고 하네

 

정윤천

 

 

그리웠던 쪽의 풍경에게로 눈을 주려 하네

막다른 것을 향하여 짓거나 지으려고 한다네

행여 형리가 와서 내 창에 비친 거동을

낱낱이 살피어보다가 갔다, 라고 하여도

숨길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가리지 않으려 하네

흉금에서 기른 내 마음의 문장, 흔들리는 획으로

나는 그렇게 짓거나 지으려고 했던 행간의 한 뼘도

쉽사리 내어주거나 빼앗기지 않을 것이네

 

나는 가끔 뒷짐을 지고 내 작약 꽃밭의 이랑을

자갹자갹 걸어보기도 할 것이네

엽록(葉綠)을 지으려 하였던 일만 사랑이라 믿지 않겠네

차고 딱딱한 날이 닥치더라도

마지막까지 지으려 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구구절절한 구만대장경이었겠는가

꽃보다 앞서, 그보다 깊은 뿌리가 있었다는 사실로

나는 작약 꽃밭의 둘레를 내어주려고 한다네

 

- 시집 "십만년의 사랑"(문학동네) 중에서

 

[감상]

정윤천 시인의 시는 늘 따뜻하고 아늑하다.

결코 어려운 시어를 쓰거나 복잡한 주제를 다루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는 늘 감동이 있고 여운이 남는다.

우리 생활주변의 일상이나 소소한 인간사를 보들보들한 시어로

술술 풀어내는 가히 언어의 마술사같은 시인이다.

짓다는 말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읽힌다.

업을 짓고, 인연을 짓고, 사랑을 짓고, 마음을 짓고,

세상의 풍경을 짓고,

따지고 보면 세간사의 모든 것 가운데 짓지 않고 되는 게 어디 있으랴

이제는 모든 것이 허물없어지는 세월의 저편에서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풍경을 키우고

사소한 인연의 끈도 소홀히 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읽는다

작약이 키우는 뿌리의 반경을 익히 아는 탓에

오직 사랑을 위해, 그리고 꽃의 지극한 한 순간을 위해 헌신한

그 내밀한 인내와 순결의 시간을 마음으로 읽는 시간이다.

 

[양현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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