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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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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18-04-1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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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문안

김지명

 

   가족 같은 분위기다. 친구의 부인은 성격이 아주 명랑하여 서로 만날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한다. 친구가 일찍 집으로 오는 날이면 두 부부가 함께하는 날이다. 앞집이 아니면 우리 집에서 두 가족이 둘러앉으면 전투 훌라 게임이나 고스톱 놀이를 한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함께 외식하러 다녔다. 해변에 칠 층 방에 앉아 어패류와 생선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수다를 계속한다. 두 가족은 입을 오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맛과 경치에 취한다.

   앞집에서 생활하는 기철이네 부부는 우리 가족과 어울리기를 아주 좋아한다. 두 부부가 이십 년을 아파트 앞뒷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혈육 같은 사이로 친해졌다. 서로가 내 집처럼 들락거리니 가족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자주 오가는 탓에 양가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안다. 앞집 친구 기철은 중소기업 중견 간부이고 부인은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그들은 즐겁게 살아가는 원앙새 같은 부부다. 자녀도 출가시켰고 이제부터 손자가 태어날 때까지 즐거움만으로 살겠다고 한다.

   이천십일 년을 시작하자 한순간 한 달이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이다. 아침 출근길에 앞집 친구의 부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며칠 못 본 탓에 미소 지으며 인사하니 부인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고개 돌린다. 명랑한 성격이라 평소에는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데 오늘은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살다 보면 우울한 날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부인에게 요즘은 친구가 보이지 않는 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었다. 부인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아무런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고개 숙였다.

   견문이 쌓이면 철학자처럼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 부인의 표정이 상상 밖으로 무겁고 어두워 보였다. 항시 생글거리던 그녀의 안색이 밝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전화하면 회사 일이 바빠서 당분간 못 본다고 한다. 젊을 땐 볼링이나 탁구 등 각종 스포츠를 함께하면서 세월을 녹였는데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니 의아하다고 했다. 집안에 무슨 우안이 있는가 하고 다시 물었다. 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피한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병원에 간다고 덧붙인다. 누구의 병문안인가 따졌더니 한참 망설이다가 남편이라고 했다.

   친구가 몸을 숨기고 한순간 잠적한 곳은 병원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회사 영업하느라 술을 자주 마시고 오더니 결국 간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 온몸이 굳어진 느낌이 들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인에게 문병을 같이 가도 되겠는가 하고 물었다. 고개를 저으면서 어느 병원인지 물어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멀어져 가는 부인의 뒷모습이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 같아 보여 마음이 아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래간만에 인사하는 친구의 자녀를 만났다. 아빠의 소식을 듣지 못해 궁금하다고 했더니 대성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 부부는 곧장 대성 종합병원 내과 병동을 찾아갔다. 입원한 병실 앞에서 친구의 명패를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부부가 환자의 침대에 마주 앉아 우리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창백한 얼굴에 가느다란 목소리로 우리 부부를 반긴다. 병명을 모르면서도 친구를 포옹하고 어깨를 다독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꿀 겸 친구에게 신혼여행 온 호텔 방이 왜 이런가 하고 웃었다.

   친구가 창백한 얼굴로 모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본다. 기철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년의 나이에 투병 생활하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한다. 무슨 병인데 그렇게 심각한 표정인가 하고 반문했다. 친구는 내 손을 꼭 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암 말기라서 수술이 불가하다고 한다.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어려 천장만 바라보았다.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하다 못해 삶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게 하는 친구가 가엽기만 하다. 친구는 속세를 떠나 산속으로 가려고 부부가 의논 중이었다고 한다.

   친구의 상황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하고 싶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토록 심각한 줄도 모르고 위로의 말을 전하려 왔다가 고압선에 감전당한 느낌이다. 할 말을 잃고 침묵으로 친구만 바라보았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들어온 부인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 순간 아내도 그녀를 감싸 안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삽시간에 병실 안은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곁에서 병간호하던 이웃 아주머니도 한순간 자신의 남편을 잊고 옆 환자의 애석함에 눈물을 훔친다.

   투병 생활은 자기와 싸움인데 집념이 강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 내가 지켜본 친구는 의지가 아주 강한 줄 안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 마음을 비우라고 일렀다. 오욕을 버리고 산사나 산속 외딴집에서 자연인처럼 생활하라고 권했다. 친구도 산사로 찾아가 마음 수양을 하겠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조용한 암자에 머물다가 건강이 좋아지면 하산할 때 연락할 테니 그때 보자고 덧붙인다.

   하산을 기다리겠다고 친구에게 희망을 주면서 기분을 돋웠다. 언젠가는 완치라는 소식과 함께 만나는 그날까지 기도에 열중하겠다며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전처럼 환한 웃음소리로 즐거움을 함께할 그 날을 기다리겠다고 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부인에게 목숨은 쉽게 끝나지 않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지켜보자고 했다. 매스컴을 통해서 들었으나 암 말기에 산속 생활에서 완치한 사람들이 살아오듯이 친구도 곧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친구는 병을 안고 공해 속에서 삶을 버틴다. 이젠 병명을 알았으니 삶을 찾아 산속으로 들러서 맑은 물이 샘솟는 곳에 자리 잡고 투병 생활에 젖어 들겠다고 한다. 의술의 부족함을 자연에서 힐링하려고 입산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인다. 식물성 병원균인 피톤치드는 항암치료제로서 으뜸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체험하면서 완치를 기대한다고 했다.

   친구의 애처로움과 병간호하는 부인의 눈물이 슬픈 영화의 한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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