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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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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도일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491회 작성일 18-08-1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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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일등


                                                                    

서울대를 장학생으로 입학해 우수한 실력으로 졸업한 뒤, 동 대학원을 수료하고 박사 코스를 밟고 있는 청년을 나는 알고 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그저 부럽다는 생각뿐이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수려한 외모, G대학 총장을 지낸 아버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형, 어느 것 하나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유창하게 구사하는 영어실력 하나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야말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그와 알고 지내는 가운데 그가 의외로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학에서 공부 할 때도 그랬다고 했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젊은이라면 공부하느라고 술과 담배는 아예 거리가 멀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둘이 만나 술을 마시게 되는 날이면 그는 소주 두 병, 나는 한 병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내 곱절을 마시고도 그는 별로 취하지를 않았다. 그 비결이 궁금해 어느 날 물었더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 

"긴장? 나하고 술을 마시는데!" 

그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자신은 늘 긴장 속에서 산다고 했다. 

"긴장 속에서 살 다니? 그건 또 무슨 말?" 

뜻밖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뒤를 잇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해가 갔다.


중학교시절 그는 다른 과목은 다 전교 일등이었는데 영어가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서 궁리를 한 끝에 영어교과서를 아예 통째로 외우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어교과서를 통째로 외웠다고 했다.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다니. 그 이후, 그는 영어마저 전교 일등을 차지해 전 과목 일등이 되었다. 결국 자기가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수많은 학생들이 항시 자신의 자리를 넘보고 있어서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긴장하고 산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자신은 어린 나이지만 지금까지 공부 때문에 마음 편히 세상을 산 날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항상 불안한 가운데 쫓기듯이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술을 마시게 됐고 담배도 줄 담배를 피웠다는 것이다. 세상을 나름대로 편하게 살아 온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럼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일등을 고집 해 야 할 이유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형이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어딜 가나 일등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형을 본받아 자신도 당연히 그래야했고, 또 집안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이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서울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다. 학교를 오직 일등만을 하기위해서 다니다보니 모두가 경쟁자라서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속내를 들어 내놓고 이야기 할 변변한 친구 한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고 했다.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 


인생의 목표가 공부가 전부인가? 아니, 일등인가? 

그것은 아니다. 일등을 하면서도 그토록 불안한 정서로 세상을 살 바에야 무엇 하러 일등을 한단 말인가. 차라리 불안하고 고독한 일등을 내주고 마음을 열고 친구들을 사귀며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닌가. 학문으로 인격을 완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때문에 불안 속에서 살아야했다니,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되어 있었다.

사람에게는 각기 타고나는 재주가 있다. 그에게도 공부 말고 또 다른 재주가 있었을 것이다. 일등이 아니면 어떤가, 마음 편히 학업을 끝내고 다른 재주를 찾아서 갈고 닦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세상에 잘 난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잘 났다고 해서 잘난 만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큰 틀에서 보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일등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오늘은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일등의 자리에 올랐지만 항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그 자리를 내준다고 해서 인생에 패배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로인해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 때문에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따듯한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길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창백한 그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 이후, 나는 가끔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잘 난 사람이 되려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인생이 그렇게 길지는 않다. 그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라.”

행복은 높은 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받아드리고 느낄 수 있는 가슴만 있다면 파란하늘 가을 들녘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나는 것을 보고도 얼마든지 행복해 할 수 있다. 가슴을 꽁꽁 닫아걸고 어찌 그것을 느낄 수 있겠는가. 가슴을 열고 세상을 맞을 때, 비로소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수려한 외모지만 자신을 음습한 세상에 가둔 채 외롭고 고독한 길을 홀로 가고 있는 그가 한없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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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요소님의 댓글

profile_image 요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신이 만들어 낸 감옥 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처럼 보이네요.
무조건 잘 해내야 한다.... 나는 더 잘 나야 한다... 성공해야 인정받는다.....
우린 삶을 살면서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ㅠㅠ

요즘 제 고민들.... 이네요.
슬픈 현실은 젊음, 외모, 학력, 재력, 권력으로 평가되는 삶의 성공여부들....

누구처럼 사는 게 아닌 순수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
흔히 '바보'라고 하는 삶이 더 멋지다는 것을 이젠 우리 스스로 일깨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도일운님의 댓글

profile_image 도일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이나 저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대끼는 현실 속에서는 그것이 쉽지가 않겠지만, 허나 부질 없는 욕심을
버릴 수만 있다면..

바보

낮에는 돈 벌고
밤이면 시를 쓴다
그리고 엎드려 운다
빛바랜 세월 한 장을
가슴에 안고

바보라고 하는 말에 문득 옛날에 써논 시 한편이
생각이 나는군요. 가슴아픈 세월이었지만 그리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기도 했답니다. 행복은 이렇게 아픈가운데서도 찾고 느낄 수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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