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일하러 나가고 나면 꼬마는 그만 심심해집니다.
친구들은 다 유치원을 가버리고 골목에 나가보았자 같이 놀 친구도 하나 없습니다.
엄마가 없다는 것보다 친구가 없다는 것이 사실 더 외롭다는 걸 꼬마는 압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손때 묻은 자동차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툭 던져버리고 맙니다.
처음 가졌던 날의 신기함도 이미 사라진지 오랩니다.
“쪼르륵...” 배가 밥 달라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쪽문 열고 부엌으로 내려가니 엄마가 차려둔 알록달록한 상보가 덮인 밥상이 보입니다.
밥 한술 입에 넣고 김치도 하나 넣고 가능하면 오래 씹습니다. 소화 잘되라고 그런 건 아니고요...
오래 씹다보면 단맛도 나는 데다, 시간이 더 잘 가니까요.
“어? 개미잖아~.”
상위에 개미 한 마리 어찌 올라왔는지 바삐 움직입니다.
이 놈을 어쩌지...?
머리가 갸웃거리며 오물오물 밥 씹던 꼬마의 입 주변에 짓궂은 웃음이 맺힙니다.
유리잔에 물을 가득 담아온 꼬마가 개미를 찾습니다.
개미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어디로 숨었나봐요. 밥그릇도 들춰보고 된장냄비도 들춰보고...아하 요기 있었구나. 김치 그릇 밑에..
들켰다 싶은 개미가 잽싼 발놀림을 해보지만 개미에겐 큰 언덕만한 꼬마의 고사리 손이 어느새 개미를 냉큼 집어 올립니다.
요리조리 살펴보는가 싶더니 헤헤 웃으며 그만 물 잔에 톡 떨어뜨립니다. 사실 톡 소리는 나지 않았어요.
물에 떨어진 개미는 살아났음에 기뻐하다가 갑자기 어리둥절해집니다.
딱딱하지 않네...위기감을 느끼고 발놀림을 해보지만 미끌미끌 걸어지지가 않습니다.
꼬마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 잔에 떨어진 개미를 봅니다.
개미 주변에 동그스름한 띠가 둘러지고 개미는 물 속에 가라앉지 않습니다.
이상하네...왜 안 빠지지...?
검지를 곧게 펴서 톡톡 개미를 물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으...하지마~ 하지마~ 개미가 발버둥 쳐보지만 무지막지한 그 힘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괜히 새 길 개척한다고 나섰다가, 벌을 받는구나...개미는 후회를 합니다.
힘에 밀려 몇 번 물속으로 곤두박질 쳤다가 나왔다하는 사이 물을 밀어내던 에너지도 다 떨어져버리고
개미는 그만 꼴깍꼴깍 물을 삼켜버렸습니다.
물잔 밖에서 개미를 들여다보던 꼬마의 눈이 동그랗게 커집니다. 왜냐하면...
개미가 숨을 못 쉬는지 허리가 두어 번 꺾어지더니 그만 천천히 물 잔 밑으로 가라앉는 모양을 빤히 보던 꼬마가
지난여름 동네 앞, 개울에 나가 놀다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던 날의 무섭던 기억을 떠올렸거든요.
그때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그만 꼴깍 물을 마셨더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물밑으로 가라앉던 그 기억이 떠올랐던 거지요.
엄마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갑자기 꼬마의 마음이 바빠집니다. 너무 바빠 허둥대니 눈물도 찔끔 납니다.
“개미야~ 미안해~ 이럴 줄 몰랐어~ 장난이었는데...미안해~ 미안해~.”
얼른 물 잔의 물을 비우고 개미를 집어보니 개미는 물에 젖은 채 축 늘어져 있습니다.
어쩌지...어쩌지...?
둘레둘레 살펴보니 마침 부엌 창 너머로 따뜻한 햇살이 밥상 위에 내려 쪼이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내가 얼른 말려 주께. 미안해 개미야~ 미안해~.”
꼬마가 조심해서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와 함께 개미를 햇볕이 잘 쪼이는 상위에 올려놓습니다.
아직도 개미는 축 늘어진 채 물기 속에 잠겨 있습니다.
개미를 위해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데...뭘 하지...? 아! 그래~ 그거야~.
꼬마는 무릎을 꿇고 팔꿈치를 밥상에 괴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쥡니다. TV에서 본 적 있는 기도가 생각났던 거지요.
모아 쥔 손에 이마를 붙이고는...
“하나님. 우리 개미를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장난으로 했는데...그만 개미가 죽었어요. 개미 불쌍해요. 살려줘요.
앞으로 엄마 말도 잘 들을게요. 앞집 송이도 안 때릴게요. 나도 피자 사달라고 엄마 조르지 않을게요. 놀이공원 가자고도 안 조를게요...또...또...으앙~.”
종알종알 기도를 하다보니 꼬마는 자기가 한 잘못들이 너무 많음에 그만 앙~ 울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에이~ 나쁜 놈~ 하면서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까봐 겁도 났고요.
근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으앙~ 울음을 터트리다 밑을 내려다보니 햇살 속에 물기는 어느 틈에 말라버리고 개미가??
개미가 꼬물꼬물 햇살을 받으며 몸을 일으키네요!!
“와!! 살았네. 개미야~ 너 살았네~ 하나님 고마워요~.”
짝짝~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합니다.
어리둥절 깨어난 개미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장난꾸러기네. 죽이려 할 땐 언제고 살려주고 좋아라하는 건 또 뭐야...?’
“쪼르륵...쪼르륵...” 이제 배가 밥 달라는 신호를 보내며 신경질을 냅니다.
그 개미를 개미들 다니는 길가에 내려주고 꼬마는 어느새 그 모든 일을 잊은 듯 밥을 먹습니다.
물론 밥 풀 하나 개미들이 다니는 길에 놓아두는 것을 잊진 않았죠.
밥을 다 먹고 그르륵 트림까지 하고 그제야 다시 생각나 살펴보니, 아까 놓아둔 그 밥알 주변에 개미들이 밥알 보관 창고를
큼지막한 동산처럼 만들어 두었네요.
마당에 나와보니 해가 하늘 복판에 떠 있습니다. 벌써 반나절이 지났나봐요.
골목에 앞집 송이가 노래 부르는 소리 들립니다.
“송이야~~”
달려나가는 꼬마의 발놀림이 오전보다는 훨씬 활기차 보입니다.